AI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AI 스타트업 생태계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 현재, 국내 AI 스타트업들이 기술 발전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기술’도 ‘자본’도 아닌, 바로 규제입니다. 고도화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만이 안고 있는 특수한 제도적 한계는 무엇이며, 스타트업들이 이를 어떻게 돌파하려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개인정보보호법과 AI 학습 데이터 한계
한국의 AI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규제는 개인정보보호법(PIPA)입니다. 국내법은 개인정보의 활용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가장 엄격한 편에 속하며, 특히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가공·전처리 과정에서 과도한 법적 제약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얼굴 인식 AI를 개발하려는 스타트업은 얼굴 이미지를 학습 데이터로 수집하려면 명시적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가명 처리한 후에도 재식별 우려가 있다면 사용이 제한됩니다. 반면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은 일정 조건 하에 공공 데이터셋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기술 초기 단계에서의 개발 속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국내에는 고품질의 오픈 데이터셋이 부족하고, 정부의 AI 허브 데이터셋 역시 사용 조건이 까다롭고 실제 산업 활용에는 제한이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스타트업이 해외 데이터셋에 의존하거나, 자체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모델 성능의 상한선**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규제 샌드박스의 한계와 느린 정책 대응
정부는 ‘AI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일부 스타트업에 실증 특례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적용 범위가 협소하고 승인 절차가 과도하게 복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신청부터 심사, 승인까지 평균 4~6개월 이상 소요되며,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이 시장 진입 타이밍을 놓치거나 피벗을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헬스케어 분야에서 AI 진단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한 스타트업은,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되어 식약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이로 인해 상용화 일정이 1년 이상 지연되었습니다. 이처럼 AI의 성격에 따라 다른 산업군의 규제를 중복 적용받는 사례가 빈번하며, 현행 법체계가 AI의 융복합 특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정책 결정 구조 자체가 매우 보수적입니다. AI 기술의 도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선 제도, 후 기술’ 기조가 고착화되어 있으며, 이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지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를 선제적으로 완화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3. AI 윤리 규제와 기업 책임 논의의 부담
AI 기술의 확산과 함께 윤리적 책임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를 기술 발전과 별개로 다루지 않고 ‘동시 적용’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는 스타트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딥페이크, 음성 합성, 이미지 생성 AI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이슈에 직면해 있습니다:
- 콘텐츠 검열 기능 탑재 의무화 논의
-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출처 명시 법제화
- 잘못된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 불분명
이러한 규제들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이러한 요구 조건을 충족할 리소스가 부족하여,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사장된 기술’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부처와 기관마다 윤리 기준 해석이 달라 AI 서비스를 법적으로 검증받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결국 많은 스타트업이 규제를 피해 ‘국내 테스트 – 해외 런칭’이라는 우회 전략을 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술과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한국 AI 스타트업, 규제를 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2025년 현재 한국 AI 스타트업들은 기술력과 아이디어 면에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멈춰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정보보호, 산업별 중첩 규제, 느린 승인 구조, 윤리 부담 등은 기술 혁신을 지연시키고, 결국 한국이 AI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진정한 AI 산업 육성을 원한다면, 규제 완화는 ‘특례’나 ‘실증’이라는 이름이 아닌, 근본적인 법·제도 개혁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은 태어나기 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국이 AI 강국이 되기 위해선, 기술보다 먼저 규제를 바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