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은 세계 각국의 노동시장에 구조적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GPT 계열 생성형 언어모델의 상용화 이후, 백오피스 직군과 콘텐츠 기반 직업군에서 실질적인 일자리 대체가 진행되면서, 고용의 불안정성은 더 이상 미래의 우려가 아닌 현실의 과제가 되었다. 그 가운데 미국과 한국은 모두 기술 발전의 선두에 있으면서도, 노동시장 구조, 사회안전망, 정책 개입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문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AI 기반 고용 충격을 자동화 도입률, 직군별 위기 수준, 정부의 대응 방식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비교 분석함으로써, 각국이 직면한 리스크와 기회, 그리고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정리한다.
자동화 도입률과 기술 흡수 속도: 미국의 시장 기반 vs 한국의 조직 주도형
AI 기술의 노동시장 침투 속도는 국가마다 산업 구조와 기업 문화, 노동 유연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기술 도입이 전적으로 민간 주도의 시장 경쟁 구조 속에서 전개되며, 기업이 인건비 절감이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자동화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대기업 중심의 공급망 내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주도의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작용하는 혼합형 모델을 보여준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은 2025년 기준, 전체 산업군 중 약 32%에서 생성형 AI 기반 자동화가 실질적으로 도입되었으며, 이 중 백오피스 사무직, 콜센터, 마케팅 콘텐츠 제작, 초급 법률 검토 부문에서 자동화율이 60% 이상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반면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AI 기반 자동화 도입률은 약 19.8%로 나타났으며, 주로 제조업(스마트팩토리), 금융업(챗봇, 리스크 분석), 공공부문 문서처리 자동화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기술 수용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내 분권화와 일자리 유연성 수준의 차이**로 연결된다. 미국은 프리랜서, 계약직 중심의 고용 유연성이 높아 기술 전환의 임계치가 낮은 반면, 한국은 정규직 중심의 고용 경직성이 강해 기술 전환 시 해고나 재배치의 사회적 비용이 크다. 따라서 미국은 ‘빠른 도입–빠른 충격’ 모델, 한국은 ‘점진적 도입–제한적 충격’ 모델로 나타나며, 이는 후속 정책 대응에도 구조적 영향을 준다.
직군별 고용 충격 비교: 콘텐츠 기반 중간층의 공통 위기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생성형 AI는 특히 중간 숙련도의 백색직군(화이트칼라)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나라의 노동시장에서 공통적으로 AI에 취약한 직군은 문서 기반 기획, 고객 상담, 텍스트 콘텐츠 제작, 데이터 입력·정리, 단순 번역 등 반복적이고 규칙 기반이 강한 업무군이다. 미국에서는 ‘법률보조원’, ‘회계사무원’, ‘기술지원 상담사’와 같은 중간관리직이 GPT 기반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점진적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법률 테크 기업들이 계약서 초안 작성, 판례 요약, 소송 대응 문서의 자동화를 도입하면서, 신입 변호사 수요가 급감한 것이 대표 사례다. 미국 프리랜서 플랫폼에서는 콘텐츠 작성 관련 의뢰가 2023년 대비 3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출판·홍보 콘텐츠 제작사, 광고대행사, 고객상담 콜센터, 일반 사무지원 부서에서 GPT 기반 생성 시스템이 빠르게 도입되면서, 해당 직무의 채용 수요는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사람보다 AI 툴이 더 신속하고 정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AI가 '사람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양국 모두에서 AI에 강한 직군도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인간 고유의 감정 조절력, 전략적 판단, 복합적 관계 조율이 요구되는 직무는 여전히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HRBP(Human Resource Business Partner), 조직문화 설계자, 창의적 인터페이스 기획자,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윤리 검토자 등은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닌,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사람 중심의 가치를 조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정부 정책 대응의 온도차: 미국의 민간 주도 vs 한국의 국가 개입형 모델
미국과 한국의 AI 고용충격에 대한 대응 정책은 그 철학부터 다르다. 미국은 민간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면서 ‘기회 중심의 개입’을 강화하는 반면, 한국은 정부 주도의 보호 정책과 재교육 시스템 구축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은 2024년부터 ‘AI Workforce Framework Act’를 통해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고용 재편을 할 수 있도록 하되, 재직자 대상 온라인 리스킬링 플랫폼, 주 정부 단위의 고용 데이터 예측 툴, 저소득층 대상 AI 커리어 트레이닝 지원금 등을 통해 간접 개입을 강화했다. AI 분야 신규 창업자에게는 법인세 감면, 대학 연구 연계 펀딩, 이민 우대 등의 혜택도 확대되었다. 반면 한국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AI 고용영향 대응 로드맵(2024~2028)’을 수립하여, ▲ 고위험 직군 사전 모니터링, ▲ 공공 재교육 플랫폼(K-Digital Training) 확장, ▲ AI 활용 직무 전환 훈련, ▲ 중장년·청년층별 맞춤형 커리어 설계 지원 등의 세부 과제를 실행 중이다. 특히 공공부문 채용 시 AI 관련 직무 경험을 우대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GPT 기반 커리어 진단 키오스크를 공공청사에 설치해 취업 상담을 자동화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기회를 중심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 한국은 위기를 중심으로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이 적응하는 방식이라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각국의 역사적 노동시장 철학과 사회 안전망 구조가 반영된 결과이며, 향후 AI가 더 고도화되었을 때 어떤 모델이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중요한 비교 지표가 될 것이다.
결론
미국과 한국은 AI가 촉발한 고용 충격이라는 동일한 문제 앞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유연성과 민간 주도성이 높은 만큼 빠른 도입과 빠른 조정을 경험하며, 기술 격차의 극복을 개인과 기업의 전략에 맡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정부 주도의 보호 정책과 재교육 체계로 안정적인 이행을 추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단지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일의 방식’을 전환시키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 공통적으로 백색중간층의 위기, 콘텐츠 기반 직군의 재편, 그리고 사람 중심 직무의 재부상이라는 흐름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마주할 변화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공존하며 인간 고유의 가치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과 한국의 사례는 그 방향성과 속도, 방식의 차이를 통해 각자가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며,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한층 더 균형 잡힌 노동시장 전략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